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(문단 편집) === [[미국]] === 미국은 [[제1차 세계 대전]]에서 다른 참전국에 비해 별 피해도 안 입고 돈만 잔뜩 벌었다. 참전 자체도 [[1917년]]의 일이었으며, 그동안 유럽국가들에 돈 빌려주고 물건을 팔아먹었고 참전 직후에는 대규모로 병력을 파병하여 최종적인 전쟁승리에 기여했다. 때문에 국제외교가에서 미국의 입지와 영향력이 상당해졌다. 하지만 아직 군사적으로 미국은 별것 아닌 상황이었다. 그러는 동안 미 해군은 대대적으로 건함경쟁에 나섰다. 유럽 국가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중이던 [[1916년]]에 8척의 주력함을 건조하기로 했으나, [[1918년]]에는 28척으로 늘렸고, 의회에 추가 예산을 요청했다. 그러나 행정부와 의회는 '''돈 없다!'''며 삭감했고 16척이 되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, 미 해군의 건함 슬로건은 'second to none.' 즉, 2등은 필요없고 무조건 해군력 1등이 되겠다는 것이었고, 실제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세계 최대의 전함 보유국은 미국의 몫이었다. 미 해군이 이렇게 어마무시한 목표를 세우게 된 배경은 바로 '''[[영일동맹]]'''이었다. 미 해군은 [[대서양]] 방면에서 영국을, [[태평양]] 방면에서 일본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었다. 당시 미 해군은 두 해역에서 강대국을 상대로 하는 양면전쟁을 벌일 여력이 없었다. 물론 [[미국-스페인 전쟁]]에서 양면전쟁을 한 적은 있지만 그때는 상대가 [[스페인]] 하나 뿐이라 실질적으로 전선만 분리되었을 뿐 일반적인 전쟁과 조건은 다를게 없었고 스페인의 국력도 한참 꺾인 후였으므로 사실상 논외였다. 미 행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외교적 이상주의로 타개하고자 했다. 이상주의자였던 [[우드로 윌슨]] 대통령의 [[국제연맹]] 제안으로 시작된 미 행정부의 이상주의는 [[워런 G. 하딩|워런 하딩]] 행정부에도 이어졌다. 결론은 '우리랑 남들이랑 다 같이 억제하면 세계는 평화로워질 것이다.'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